2015년 7월 2일 목요일

안상홍님 지으신 모든세계








생명의 지적 설계자



다음 질문에 대해 당신은 어떤 답을 하겠는가?
첫째, 63빌딩의 설계도가 있을까?
둘째, 63빌딩의 설계도가 있다면 설계자가 있을까?
셋째, 설계도를 보면 설계자의 능력을 알 수 있을까?
넷째, 건물에 설계도가 있는 것처럼 생명체에게도 설계도가 있을까?


기계나 장치를 만들 때 사용 목적에 맞는 기구, 구조, 치수, 재료 등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그 개요를 그린 도면을 설계도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가구, 자동차, 휴대폰 등 모든 사물들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설계되었다. 그리고 설계도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설계자(Designer)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설계도를 보면 설계자의 지적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단순한 개집을 짓는 것과 복잡한 최첨단 빌딩을 짓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의 갯수는 대략 2만 개 정도라고 한다. 그 2만 개의 부품이 설계도대로 완벽하게 결합되어 조여지고 각자의 자리에 위치했을 때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고 거리를 질주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중 단 하나라도 빠지거나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자동차는 결함이 생기고 달릴 수 없는 고철덩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러한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인 원리 속에서 발명품을 만들어낸 과학자들을 위대하다고 평가한다.


만일 누군가가 “자동차는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2만 개의 부품이 공중에 흩어졌다가 각기 그 위치에 저절로 떨어져 알아서 조립되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사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물을, 그것이 크든 작든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처럼 호흡이 없는 무생물의 경우에도 설계도가 있고 설계자가 있는데, 하물며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어떠할까. 놀랍게도 생명체에도 설계도가 있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과학자들에게 따르면, 사람은 약 50~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각각의 세포에는 염색체가 있고, 그 염색체 안에는 DNA라는 유전물질을 갖고 있다. DNA는 아데닌(Adenine), 구아닌(Guanine), 사이토신(Cytosine), 타이민(Thymine) 4종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이니셜을 따서 A, G, C, T로 표시한다. 이들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서 A와 T, 그리고 G와 C가 서로 짝을 이루며 A는 T와, 그리고 G는 C와 반드시 마주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들의 조합에 의해 서로 다른 아미노산이 형성되고 이 아미노산들이 모여 하나의 세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세포가 50~60조 개가 모여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A와 T, 그리고 G와 C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세포 하나의 설계의 정보량은 A4 용지 1백만 페이지에 해당하며 이는 백과사전 1000권의 분량에 해당한다고 한다. 실로 엄청난 정보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엄청난 정보량을 담은 세포 하나하나가 모여 50조 개 이상을 이루어야만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중에 단 하나만 잘못되어도 제대로 발육하지 못하고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 그야말로 가장 복잡하고 섬세하고 완벽한 설계도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람이다.


한 과학잡지에 의하면, 인류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정보데이터의 양이 295엑사바이트에 해당한다. 참고로, 1엑사바이트는 10억 기가바이트와 같은 양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간의 DNA가 가진 저장능력에 비하면 이 엄청난 양은 비교가 안 된다. 295엑사바이트의 정보량은 DNA의 저장능력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우리의 ‘몸’ 설계도는 인류가 측량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규모다.


모든 생명체에는 각각의 설계도가 있고 그 설계도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견해다. 곧 우리 몸 하나하나의 세포를 들여다보면 나를 존재케 한 설계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체가 존재하는 데 있어 설계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이는 생명을 설계한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복잡하고 정밀한 설계도를 설계하셨다는 것은 설계자의 능력이 가히 측량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 영혼의 창조자,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브리서 3:4)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 40:26)


지금, 내가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도록 설계하신 설계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과정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친히 성경의 기록을 통해 당신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권고하고 계신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를 만나야 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참고자료>
1. ‘인류가 축적한 정보량과 인간 DNA 비교하니’, 지디넷코리아, 2011. 2. 12.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10211172659&type=det
 2. ‘DNA의 분자구조’, 두산백과
3. ‘지적설계’, 위키백과



출처 : www.pasteve.com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증거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하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와 어머니 하나님을 존재 하신다고 증거합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주시고 어머니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라야할 이 시대의 구원자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 비록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나타나셨지만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교회입니다.
세상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하나님을 재대로 알지 못합니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교회에서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2015년 6월 17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해외성도방문단 소식이에요



출처 : 먼길 온 해외성도들 수원화성서 하나님의 사랑느끼다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9234

하나님의교회 해외성도방문단이 수원화성을 방문했습니다.
매년 더 많아지는 하나님의교회의 해외성도방문단
어머니의 나라에서 어머니께 더 많은 사랑을 받고 느끼셨겠죠?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는 얼마전에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하였죠?


적외선 사진

적외선 사진을 준비중입니다. ^^
아마 재미있는 사진들이 나올것 같습니다.
필터들도 준비가 되었고 이제 카메라만 조금 개조하면 되겠네요

개조되지 않은 카메라로도 한번 찍어봤지만 적외선 영역이 팍팍 들어오지 않네요
하지만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2015년 6월 15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홈페이지에 표창소식이 있어요


www.watv.org

오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 선교협회 홈페이지를 방문했습니다
이번에 받은 대통령상수상 소식이 있더라구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엘로힘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네요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는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세상과 함께 할것입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하나님의교회 화이팅입니다


2015년 6월 14일 일요일

단체상 최고의 영예 대통령표창을 받은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

 
출처 : 충복일보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가
바다의 날을 맞이하여 대통령표창을 받았습니다.
이상은 단체상 가운데 최고의 영예이고
종교단체가 받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일입니다.
 
더군다나 공적이 5년이상 인정되야 하며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여야 합니다.
최고의 상이니 만큼 굉장히 심사도 상당히 까다롭지요
 
하피모의 말들이 다 거짓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이네요
 
 


2015년 6월 11일 목요일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 바다의 날 대통령 표창


하나님의교회가 바다의 날을 맞이하여
단체상중에 가장 큰 대통령표창을 받았습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하나님의교회는 그간 참 많은 봉사를 하고 많은 구조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늘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큰 상을 받은 하나님의교회가 자랑스럽습니다


기사출처: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100&key=20150610.22025200037

2015년 5월 28일 목요일

늦은 밤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하다



어제는 늦은 밤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사실 불이 켜져있는 것을 기대했는데 
10시도 안됐는데도 거의 대부분 불이 꺼져있어서 아쉬웠습니다.

한옥마을은 야경으로도 참 운치있을것 같은데.. 
아쉬운 발걸음이었지만 이 한장을 남깁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두번째 오신 안상홍님



안상홍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두번째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땅에 심판이 임할꺼라 생각하지만
최후의 심판전에 잃어버린 진리를 회복하시기 위해 재림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오신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또 감사해야겠습니다.

하늘 영광뒤로 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아버지 안상홍님께 감사드립니다. 



2015년 5월 27일 수요일

다른 눈으로 세상보기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요즘 저는 적외선과 자외선을 이용한 촬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시광선과 자외선과 적외선을 모두 받아들였을 경우 생긴사진입니다
로우패스필터를 제거하여 모든 파장의 빛이 들어옵니다.
어서 적외선 패스필터를 들여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적외선으로 촬영하면 사진이 어떨치 참으로 궁굼합니다. 




2015년 5월 26일 화요일

안상홍님께서 허락해 주신 승천일과 오순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얼마전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의 오순절 절기가 끝이 났습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잃어버린 3차의 7개절기를 회복시켜 주시고
모든 절기의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성경대로 절기를 지키는 곳은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신문에도 하나님의교회의 오순절 절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교회에서만 지키는 절기인 3차 7개절기 오순절을 한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승천일과 오순절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복음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책은 예수님의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시작으로 전개된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복음을 전파했다. 한때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갔던 그들이 다시금 열정을 다해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했던 이유는 사도행전 첫 장을 열면 짐작할 수 있다.


승천일 



예수님께서는 무교절에 십자가에 운명하셨다가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지 40일 만에 사도들과 함께한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다.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부활하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사도행전 1:2~9)


승천일은 바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승천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보이신 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소망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사도들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시며 천국복음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교육을 통해 믿음을 곧추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오순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 만에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성도들은 120명이었다. 이후 성도들은 10일 동안 간절히 성령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 끝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게 된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오순절은 바로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날이다. 부활절로부터 정확히 50일째 되는 날이다. 2천 년 전 이날,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천하 각국 사람들에게 담대히 예수님을 전파해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하루에도 3천 명, 5천 명씩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고, 방언의 능력으로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면서 그리스도교는 일대 전기를 맞는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매년 유월절과 무교절, 부활절(무교절 후 안식 후 첫날)을 지켰으며,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는 그리스도의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오순절을 지켰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후 첫날(부활절)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사도행전 20:16)


사도행전 20 장에 나타난 절기의 배열을 보면, 맨 먼저 무교절이 기록되었고, 다음에는 부활절이 기록되었고, 다음에는 오순절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절기를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 다른 기록을 보자.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고린도전서 16:8)


사도 바울이 이방지역인 에베소에 체류하면서 오순절까지는 그곳에 머물러 있겠다고 한 내용을 보더라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방지역에서도 오순절을 지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약시대의 승천일과 오순절

이러한 신약의 역사는 구약시대부터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월절을 통해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에 홍해를 건너 상륙한 날(안식일 이튿날)로부터 40일째 되는 3월 1일, 시내산 앞에 장막을 쳤다. 그리고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뵈었다. 이는 장차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것을 예표로써 보여주신 것이다.


10일 뒤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다시 시내산에 올랐는데, 이날이 칠칠절, 신약의 명칭으로는 오순절이다. 이날은 홍해를 건너 상륙한 날로부터 정확하게 50일째 되는 날이었다.


안식일 이튿날(초실절)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다음 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 (레위기 23:15~16)


칠칠절은 초실절(신약의 부활절로, 무교절 후 안식일 이튿날)로부터 7 안식일 다음 날에 지키는 절기로서, ‘안식일을 일곱 번 지나서 지키는 절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49일째 되는 다음 날이 되며, 50일 즉 10일을 다섯 차례 계수하는 의미에서 오순절(五旬節)이라 이름한 것이다.

2015년 5월 19일 화요일

안상홍님께서 알려주신 아브라함가정의 비밀


아브라함 가정에 숨겨진 비밀을 알고 계시나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가정에 놀라운 비밀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아버지 안상홍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 어머니를 알려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기억을 잃은 우리들에게 아버지 안상홍님께서는 친히 어머니를 증거하셨습니다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그리고 하늘 어머니..
우리가 알아야할 비밀이고 최고의 진리입니다






천국을 상속하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았던 도시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도시를 꼽으라 한다면 지금의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지역에 있는 하란이다. 3500년 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곳으로 이주해 온 인물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 그 주인공이다.


하란에 살았던 아브라함은 후에 모든 유대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조상이 된다. 그의 기록은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다. 태어난 곳부터 아내 사라와 함께 가나안으로 이주하며 겪는 모든 일들과 그가 낳은 자녀까지.


하나님께서는 왜 이토록 많은 성경의 지면을 할애하며 아브라함 가정의 역사를 기록하셨을까. ‘믿음의 조상’이라는 타이틀 말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알리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누가복음 16:19~24)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비유다. 특이한 점은 나사로가 죽어서 간 곳이다.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표상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아브라함 가정의 역사를 낱낱이 기록해 두셨던 것이다. 즉 아브라함 가정의 역사는 단순히 한 개인의 가정사가 아닌 천국을 소망하는 신앙인들을 위한 표본이며 길잡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가정사 중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자손이 누구이며, 가업은 무엇이고, 이를 물려받은 자녀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이처럼 아브라함 가정의 역사 중 우리가 중점을 두고 살펴보아야 하는 문제가 바로 ‘상속자’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유업을 물려받은 후사에 대한 자격 조건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을 천국 후사에 대한 자격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과연 아브라함에게 유업을 물려받은 후사는 누구였는지 알아보자.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을 때 그의 나이 이미 75세가 넘었다. 아브라함은 상속자를 세움에 앞서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결정을 의뢰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창세기 15:2~3)


이때까지도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었다. 그의 아내 사라가 이미 70세가 넘어 자식을 가질 수 없었다. 아브라함은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4~5)


하나님께서는 엘리에셀은 후사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일러주셨다. 아브라함은 고민했다. 사라도 이 일에 대해 많은 갈등을 느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꼭 아브라함의 피를 이어받은 자녀가 후사가 돼야 했다. 결국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에 사라의 여종이었던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이스마엘이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세기 16:1~2)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세기 17:18)


아브라함은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혈육이 탄생했다. 노년에 얻은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스마엘의 탄생을 고하고 상속자로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길 바랐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19)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되리라”는 하나님 말씀은 아브라함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몸을 통해 난 자라야 상속자로서의 자격이 부여된다고 하셨다. 사라는 90세였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기적을 일으켰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창세기 21:1~3)


비로소 아브라함 가정에 유업을 이어받을 상속자가 탄생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된다’는 하나님의 뜻은 사라를 통해 이뤄졌다. 이는 아브라함 가정의 상속자는 사라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뜻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장자상속제도가 있었다.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후사가 결정됐다면 단연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이 상속자가 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후사로 결정된 것은 유업의 절대적인 조건이 바로 ‘어머니’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유업을 받지 못하고 쫓겨났으며 사라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삭이 상속자가 되었다. 아브라함의 가정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뜻은 무엇일까.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이 말씀 중 ‘우리’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다. 천국을 유업으로 받고자 하는 자들은 어머니의 자녀가 돼야 함을 바울은 기록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4:28~30)


이삭이 누구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았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되고 싶다면, 또 천국을 유업으로 받고 싶다면 과연 누가 필요한지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31)


‘자유하는 여자’는 곧 ‘우리 어머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어머니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이 과연 어머니 하나님을 믿지 않고서 하나님의 후사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 하나님만을 고집하는 기성교단은 이스마엘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삭이 어머니 사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어받은 것같이 우리도 하늘 어머니를 믿어야 천국의 유업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가정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다.

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안상홍님께서 초대해주신 천국혼인잔치로 하나님의교회

성경은 아버지 하나님 뿐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는것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아버지 안상홍님 또 어머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고 계신 성령시대
우리가 믿고 따라야할 하나님은 아버지 안상홍님
그리고 어머니 하나님이십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예언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하나님의교회를 다시 세워 주셨고 우리에게 어머니를 알려주셨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함께 계시다는 것 하나님의교회에서 구원을 받는 다는것
아버지 안상홍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토록 산다는 것 모든것이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어떤 초대

한 나라의 왕 혹은 대통령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퍽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런데 당신은 곧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게 될 것이다.



1937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 2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신부 실종’이다. 기사는 혼인을 일주일 앞둔 신부 김영자의 행방을 찾는 내용이다.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신부가 없어지다니, 신랑과 가족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성경에도 이 사건과 흡사한 내용이 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 (마태복음 22:1~1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신부가 보이지 않는다. 신랑과 하객은 있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신부는 어디로 갔을까. 혹자는 “성경의 신부는 성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그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 속 신랑은 예수님 자신이며 청한 사람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9:15, 마가복음 2:20, 누가복음 5:35)

이 말씀에서는 청한 사람들, 즉 성도를 혼인집의 손님들이라 비유하셨다. 하객을 불러놓고 신부 대신 결혼을 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성도는 결코 신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일까. 신부가 언급되지 않았던 공관복음서의 기록과는 달리 천국 혼인잔치가 성대히 열리는 장면을 기록하며 아내, 즉 신부를 언급해놓은 책이 있다. 요한계시록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7~9)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리는 모습과 그의 신부, 청함을 받은 손님들을 계시로 보았다.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은 당연히 성도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인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신부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도 요한의 요청에 천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다. 이 하늘 예루살렘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신부를 일컬어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라 했으며 하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다. 그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의 아내는 당연히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성도인 우리는 과연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온 기성교인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잣대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6~7)

예루살렘이 단순히 성벽이라면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찬송을 받게 하시겠는가.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즉, 이 말씀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사도 바울이 증거한 우리의 어머니 즉, 하늘 어머니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예루살렘을 세운다고 하셨는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영적 예루살렘이신 하늘 어머니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섬기고 알아야 하는 하늘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세워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려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세기 2:22~23)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오자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며 ‘여자’라 칭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에 아담과 하와는 단지 아담과 하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경 맨 마지막에 ‘오실 자’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예수님이다. 즉 아담은 오실 자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아담이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아담이 하와를 일컬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칭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해 주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창세기 3:20)

또한 아담의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준 것도 아담이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이다. 이 말씀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늘 어머니를 알려주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세워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낳으시고 구원하실 하늘 어머니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나아온 자들이 천국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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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5일 화요일

하늘가족 하나님의교회 아버지 안상홍님

이 땅에 가족 제도는 하늘의 것의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하늘 가족제도가 완벽하게 있는 곳은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 유일하게 천국가족이 완벽하게 있는 곳입니다.
안상홍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는 형제 자매이고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어머니 없는 곳은 가족의 완전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완벽한 하늘 가족을 만나볼까요?





천국가족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브리서 3:4)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만물에 당신의 뜻을 담아 놓으셨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1)






창조된 만물 가운데 ‘가족’이라는 집단을 두신 뜻은 무엇일까. ‘가족’은 사회 구성원 중 혈연으로 이어진 1차적 집단을 말한다. 대체로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가족’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자.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8:5)


구약시대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라 지상에 성소를 지었다. 이를 두고 히브리서는 ‘하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지상의 성소만이 아니다. 가족 시스템 또한 하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뜻이다.


모형이나 그림자는 흔히 아파트를 지을 때 세우는 모델하우스를 예로 들 수 있다. 모델하우스는 아파트와 같은 모양과 구조를 띠고 있지만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아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모델하우스를 보고 실제 아파트의 구조를 알게 되는 것처럼 지구상의 존재하는 것들을 보면서 하늘의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곧 하늘에 존재하는 것이 실체라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의 ‘가족’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하늘에 존재하는 실체의 가족에 대해 알아보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족에는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늘에도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있다. 과연 하늘 아버지는 누구인가.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브리서 12:9)


육체의 아버지란 우리 육체의 모습을 가지게 한 아버지다. 이 말씀은 육체의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통해 영의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영의 아버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 영의 아버지라고 알려주셨다. 이로써 우리는 하늘 가족에도 아버지의 존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의 존재는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을 증거해준다. 왜냐하면 ‘아버지’라는 호칭은 반드시 자녀를 전제조건으로 해야 가능하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녀가 없다면 그는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릴 수 없다. 이처럼 지상의 가족 구성원에도 ‘자녀’가 있듯이 하늘 가족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6:17~18)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며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겠다는 말씀을 통해 하늘 가족에도 반드시 아버지와 자녀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 중 ‘어머니’의 존재는 어떠한가. ‘자녀’는 낳아준 어머니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주는 어머니가 없다면 ‘자녀’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과연 하늘 가족에는 ‘어머니’가 계실까. 지상의 가족을 통해 본다면 반드시 하늘 가족에도 어머니가 존재해야만 한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보내는 편지 속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일컬어 ‘우리의 어머니’라고 칭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 가족의 구성원인 하늘 자녀들이다. 바울은 하늘 자녀들에게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또한 이 글의 말미에도 바울은 하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31)


자유하는 여자는 26절에 나타난 자유자로 곧 우리 어머니를 뜻한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하늘 어머니의 자녀라는 칭호를 준 것이다. 그렇다. 하늘 어머니의 자녀가 되지 않고서는, 하늘 어머니를 부인하고서는 하늘 자녀가 될 수 없다. 이는 다시 말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지상의 가족을 통해 하늘에도 가족들이 있으며 결국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하늘 어머니를 믿지 않고서는 천국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이와 함께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가족이란 부모의 ‘혈연’으로 묶여진 집단이다. 그렇다면 과연 천국 가족은 어떤 혈연으로 묶여졌을까 하는 것이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하나님과 혈연으로 묶여지기 위해 당신의 피를 ‘유월절 포도주’ 속에 담아 두셨다. 즉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과 혈연관계에 놓이게 된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천국가족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모실 수 있는 것은 오직 유월절로 가능하다.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 이 땅에서도 왕의 후사가 되어 한 나라를 물려받는 것처럼 하나님의 후사는 영원한 천국을 물려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큰 축복을 얻게 된다.


이제 우리는 지상의 가족을 통해 천국 가족이 존재하며 유월절을 통해 천국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아껴주고 희노애락을 함께한다. 이는 천국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멀리 떠나 있다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듯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이산된 하늘 자녀들을 찾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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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4일 월요일

사라진 안식일을 찾아주신 안상홍님 사라진 안식일이 있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 토요일 예배를 지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왜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님의 가르침대로 토요일 예배를 보는 것일까요?
모두가 일요일에 예배를 볼때 하나님의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를 봅니다.
왜 그리 하나님의교회가 특별한지 알고 계신가요?

아버지 안상홍님께서는 사라진 안식일을 찾아 주셨습니다





사라진 안식일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주일의 첫째 날인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요일이 휴일로 정해져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일요일에는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는 1895년 양력(陽曆)과 칠요(七曜) 제도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관청 근무시간 규정에 일요일이 휴일로 정해졌고, 대한민국 헌정 후 1949년 6월 4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공휴일로 제정된 이래 변함없이 일요일에 쉬고 있다.


일요일을 공휴일로 제정해 쉬기 시작한 건 1600년 전 로마였다. 321년 3월 7일,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휴업령을 반포한다.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한 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반포하며 콘스탄티누스는 그날을 ‘태양의 날’, 즉 Sunday(일요일)라고 명명했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달력(율리우스력)을 보완하여 7일이 기본이 되는 칠요 제도를 도입했다.


7일 단위로 한 주간을 나누어 생활한 기원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창세기의 기록과 일곱째 날을 성일로 삼아 지켰던 기록이 그 기원이다(창세기 2:2~3, 출애굽기 20:8~11).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칠요 제도에 로마 점성가들의 사상에서 비롯된 일곱 별의 신(神)들의 이름을 접목시켜 요일명을 정했다. 일곱 별의 신들은 토성의 신, 목성의 신, 화성의 신, 태양의 신, 금성의 신, 수성의 신, 달의 신으로 불렸다. 이는 지동설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일곱 별의 신이 하루 24시간을 한 시간씩 차례대로 돌아가며 다스린다고 믿은 데서 기인한다.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행하는 토성부터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을 24시간에 맞춰 순서대로 배열하면, 첫 번째 열에 토성,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순으로 배열된다. 당시 점성가들은 바로 이 첫째 열에 오는 별의 신이 그날 하루의 첫 시간을 다스린다고 믿었는데, 콘스탄티누스는 바로 그 별의 이름을 그날의 요일명으로 정했던 것이다. 즉, 토성의 신이 첫 시간을 다스리는 날은 토요일, 태양이 첫 시간을 다스리는 날은 일요일, 달의 날은 월요일, 다음 화요일, 수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라는 요일이 만들어졌고, 그중 한 주간의 첫날을 태양의 날, 즉 일요일로 제정함으로써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순서의 칠요 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기 수 년 전이었던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관대한 정책의 칙령을 반포한 바 있다. 밀라노칙령이 그것이다. 그는 “이제부터 모든 로마인은 원하는 방식으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 로마인이 믿는 종교는 무엇이든 존중을 받는다.”는 포용정책을 쓰며 이전의 황제들과는 달리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고 공인했다. 하지만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었을 뿐 공식 종교로 삼은 건 아니었다.


역사가들은 그의 이런 행보에 대해 그가 이방종교의 최고위직 칭호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고 죽을 때까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 볼 때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는 의도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당시 로마의 대다수 국민들이 미트라(태양신) 교도였기 때문에 그들을 달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로마 교회였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미트라 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의 제도를 많이 끌어들였다. 그중에 하나가 그들이 태양신에게 예배하던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한 것이다. 황제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은 퍽이나 합리적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계명일 뿐이었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산중으로, 사막으로 피해 믿음을 지켜나갔다.


일요일 휴업령이 반포된 지 4년 후인 325년, 가톨릭은 니케아공의회를 통해 예배일을 안식일(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공식적으로 바꿨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일로 정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은 이렇게 사라졌고,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다. 하나님의 구속의 때가 되어 진리의 빛이 드러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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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9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 만나는 어머니 하나님

성경은 생명수의 근원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에대해 들어보셨나요?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는 어머니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영혼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영혼의 생명수는 어머니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에서 어머니 하나님을 만나보아요~~





생명수를 받으라


물은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인체는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물의 1~2%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며 12%가 부족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물을 두고 생명 그 자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우리 영혼에도 적용되는 진리다. 영혼의 생명인 영생도 생명수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없다면 우리 영혼도 심한 갈증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생명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아모스 8:11~13)


우리 영혼에 필요한 생명수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 시대가 하나님의 진리인 생명수를 구하지만 얻을 수 없어 영혼이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예언하고 있다. 과연 생명수는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생명수를 주시는 주체가 누구인지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요한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밧모섬이라는 곳에서 계시를 받았다. 천사가 모여준 미래에 대한 일들 속에서 그는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성령과 신부는 누구일까. 성령은 성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시다. 생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에 이 시대 성령께서 오셔서 생명수를 주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8)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 옆에서 함께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어떤 존재일까. 생명수를 베푸시는 주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생명수를 받을 수 없기에 ‘신부’에 대한 문제만큼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도 요한도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요한은 신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했다. 이는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낡은 성벽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인 예루살렘은 누구인가?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렇다.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곧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시다. 성령 혼자만이 아닌 성령과 신부께서 함께 생명수를 주신다는 것은 이 시대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수를 받기 위해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하늘 어머니를 믿어야 함을 뜻한다. 이와 함께 구약시대 많은 선지자들도 예루살렘인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실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스가랴 14:8)


실지로 어떤 건물에서 물이 솟아난다면 큰 문제다. 아마도 기초공사부터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스가랴 선지자는 생명수가 예루살렘성에서 솟아나 동서로 흐를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이는 실지 성전이 아닌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생명수가 사시사철 쉼없이 흘러 넘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렇게 시작된 생명수는 더욱 그 양이 많아져 동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흐를 것을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에스겔 47:1~5)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던 생명수가 멀리 흘러갈수록 무릎, 허리까지 차 올라 나중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이는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에는 작게 시작됐지만 마침내는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점점 더 왕성하게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 시발점이 바로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생명수라야 전 세계로 흘러간다. 세상의 다른 유명한 신학자나 성경 연구가가 아닌 오직 하늘 어머니라야 가능한 예언이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에스겔 47:12)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흘러 넘친 생명수는 결국 강이 되고 그 강 좌우에는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은 시대를 뛰어넘어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진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요한계시록 22:1~5)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생명수가 솟아난다고 예언한 반면,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언도 성령의 신부 되신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어린양의 보좌’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예레미야 3:17)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보좌, 즉 어린양의 보좌가 예루살렘이라고 증거했다.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이 기록한 ‘어린양의 보좌’는 ‘하늘 어머니’를 뜻하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는 생명강이 예루살렘에서 흘러 넘치는 모습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기록한 요한의 계시와 같다. 이는 성경 전반에 걸쳐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생명수는 오직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받은 자들만이 하늘나라에서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라도 생명수를 받지 못한다면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천국의 영광과 축복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심한 갈증을 느끼는 이 시대 하늘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말씀하고 계신다.

“오라! 누구든지 와서 생명수를 받으라.”

2015년 4월 27일 월요일

마지막 아담은 바로 안상홍님 이시랍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의 예언을 따라 이땅에 등장하신 재림 예수님이십니다.
안상홍님께서는 하나님의교회를 설립해 주시고 진리를 찾아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증거하는 책입니다.
그가운데 오늘은 마지막 아담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 아담은 누구인가?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영혼을 그 속에 넣자 비로소 아담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이렇게 창조된 아담은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했다. 후에 아담은 930세라는 나이로 죽기까지 가인과 아벨 등 많은 자녀를 낳았다고 구약성경 창세기는 전하고 있다. 이것이 아담의 일생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이러한 아담을 두고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5:45)


창조된 아담은 분명 한 사람인데 성경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 있고 마지막 아담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씀 가운데 두 아담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며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다. 첫 사람 아담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육체를 만들어 그 속에 영혼을 불어 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시킨 아담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은 누구인가. 마지막 아담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살려주는 영’이라는 점이다. 이로 보건대 마지막 아담은 죽어가는 인류를 살려주기 위해 오시는 구원자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아담을 오실 자에 대한 표상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오실 자’는 성경 맨 마지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오실 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오실 자’를 표상하는 아담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아담 또한 마지막에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시는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인류를 살려주실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다. 과연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신단 말인가.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을 당신의 살로, 유월절의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려주는 영’인 마지막 아담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마지막 아담의 예언 그대로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 재림 예수님은 과연 누구일까.


출처 : www.pasteve.com 패스티브닷컴



마지막 아담은 바로 안상홍님이십니다.
안상홍님은 유월절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오직 새언약 유월절은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만 지키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도 안상홍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 


2015년 4월 24일 금요일

우리는 어머니 품에 살아갑니다




해외에 살때 많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다들 집을 떠나 고생들이 많았지요

모두에게 공통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바로 어머니 였습니다.

집을 떠나 세계를 여행하는 모두가 겪는 그 마음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그 마음입니다


2015년 4월 23일 목요일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 에서 배우는 법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잘 모르신다면 안상홍님께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한번 조금 자세히 볼까요?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법이 정확히 있고 지켜집니다.
오늘은 페스티브에서 나오는 법 적용의 원칙이라는 글을 함께 볼까 합니다.

그리고 

왜 안상홍님께서 중요하신지 하나님의교회가 중요한지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법 적용의 원칙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상호 간의 약속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약속은 수많은 법규들로써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 간에 생활관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분쟁도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분쟁을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법규 또한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수많은 법규가 생겨남에 따라 이에 따른 조정사항 또한 발생하기 마련이다. 어떠한 법규를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하는지, 상호 충돌되는 경우에는 어떤 법규를 먼저 해석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일정한 순서와 법칙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법을 적용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상위법 우선의 원칙’이다. 법에는 일정한 단계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는 근본법으로 헌법이 존재하고, 헌법 아래 법률, 명령, 조례, 규칙 순이다. 이렇듯 하위법의 내용은 상위법의 내용에 위반될 수 없다는 원칙이 바로 상위법 우선의 원칙이다.

최근 형법 제241조에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던 간통죄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통해 폐지되었다. 법률은 헌법의 아래 단계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 이상,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영적으로도 잘 맞아 떨어진다. 마치 그림자와 실체처럼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율법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약속하신 구원을 받고 마침내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율법은 법 적용의 원칙이 어떻게 반영될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켜야 할 영적 상위법, 즉 최고단계의 법은 오직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율법이다. 성경을 통해 제정해주신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아래 단계의 법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구원의 약속이 있을 수 없다. 예배일을 예로 들자면, ‘안식일’이 상위법인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애굽기 20:8)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가복음 16:9)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법을 주셨고, 예수님께서 친히 본보여 지키셨으며, 그 안식일은 부활하신 일요일 전날인 토요일임을 성경으로 증거해주셨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예배일을 일요일로 정해놓고 지키고 있다. 이것은 상위법 위반이다. 사람이 만든 법은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일요일 예배를 어떻게 재판하실까? 틀림없이 위법 판결을 내리실 것이다. 효력이 없으면 지킨다 한들 구원의 약속도 없다.

두 번째 원칙은 ‘특별법 우선의 원칙’이다. 특별법은 특수한 상황이나 특정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을 말한다. 이에 대비되는 개념인 일반법은 모든 사항과 사람에게 적용되어 영향을 미친다. 특별법은 특수한 사항을 규율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기 때문에, 해당되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일반법보다 우선시된다. 예를 들어, 민법에 대한 특별법으로는 상법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있고, 형법에 대한 특별법으로는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등이 있다. 성경에도 이런 특별법이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7)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성경을 통해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속 곧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알려주신 것이 바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법이라고 한다면, 특별하게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도 구원을 약속받은 자도 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3:39~43)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렸던 두 행악자 중 한 사람에게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자는 그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 왔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는 왜 낙원을 약속받게 되었을까? 바로 특별법이 적용된 것이다. 곧 죽을 목숨인 그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죽기 직전,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했다. 특별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재판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특별법을 적용하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곧 특별법이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신법 우선의 원칙’이다. 법률이 개정된 후에는 이전에 적용되던 구법은 잊어야 한다. 반드시 새로 개정된 신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다만 이 원칙이 요구하는 것은 신법과 구법이 동일한 형태의 법률일 경우다. 이 원칙이 타당한 이유는 신법이 구법보다 현실에 좀 더 부합하고,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입법자가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경했다는 것에 있다. 하나님의 법에도 구법과 신법이 있다. 즉 구법이 신법으로 개정된 것인데, 이제는 하나님의 신법을 우선적으로 지켜야 한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히브리서 8:7~8)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8:13)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태복음 5:17)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첫 언약은 구약시대에 주신 모세의 율법이고, 새 언약은 신약시대에 주신 그리스도의 율법이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양이나 염소 같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희생제물이 되셔서 새 언약인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완전케 해주셨다. 많은 교회들은 “율법은 폐지되었다”며 하나님의교회를 가리켜 율법을 지키는 교회로 매도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하나님의 율법은 폐지된 것이 아니라 개정된 것이다. 부족한 우리가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신법인 새 언약,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완전하게 바꿔주신 것이다. 즉, 신약시대 이후로는 신법인 새 언약을 우선으로 적용해서 지켜야 하나님의 약속인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법률 불소급의 원칙’이 있다. 이것은 행위 당시의 법률에 따라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행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법률이 이후에 제정되었다고 해서 이전의 행위에 대해 소급하여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1~12)

하나님의 법에도 이 원칙이 적용된다. 시대에 따라 구원자의 이름이 바뀌었다. 성부시대에는 구원자의 이름이 여호와였다. 그런데 성자시대에는 예수님으로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니 구원자의 이름도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성부시대 여호와 하나님을 구원자로 믿었던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 성자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더 이상 여호와가 아닌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성령시대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이제는 예수님이 아닌 성령시대의 구원자인 예수님의 새 이름을 불러야 한다. 물론, 성자시대에 살았던 자들이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인 예수님의 새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성령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새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성경은 “예수님의 새 이름은 받는 자만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성령시대 구원자로 임하신 새 이름을 알고 영접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혹여 사람들이 만든 법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의 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명예와 권력이 있든 없든, 지혜와 지식이 많든 적든, 누구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만인에게 열려 있다.

<참고자료>
1. ‘법적용의 원칙’, 네이버 지식백과
2. ‘62년 만에 간통죄 폐지...헌재 '위헌' 결정...부부 性생활에 국가 개입 'NO'’, 매일경제, 2015. 3. 2.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196676


출처 : www.pasteve.com 패스티브닷컴


2015년 4월 13일 월요일

2015년 4월 12일 일요일

안상홍님께서 찾아주신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저는 참 떡을 좋아합니다
성경에 중요한 떡이 나오는걸 아시려나 모르겠네요
성경에 있는 떡은 정말 정말 중요한 떡입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유월절을 찾아 주셨습니다.
안상홍님께서 찾아주신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교회 뿐입니다.
얼마전에도 하나님의교회는 유월절을 지켰지요

그럼 안상홍님께서 찾아주신 유월절을 지켜서 축복을 받아야 겠습니다








떡과 유월절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크고 작은 행사에 여러 가지 다양한 떡을 상에 올렸다. 명절이나 생일에도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떡이다. 떡의 어원은 동사 ‘찌다’가 명사가 되어 찌기→떼기→떠기→떡으로 변화된 것으로, 본디는 ‘찐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떡은 반죽과 만드는 방법에 따라 그 이름이 참으로 많다. 쌀가루를 찐 것은 이(餌)라 하고, 쌀을 쪄서 치는 것은 자(瓷)라 하며, 기름에 지진 것은 유병(油餠)이라 한다. 또 꿀에 반죽한 것은 당궤(餹鐀)라 하고, 가루를 반죽하여서 국에 넣고 삶는 것은 박탁(餺飥)이라 하며, 찰가루를 쪄서 둥글게 만들어 가운데에 소를 넣은 것을 혼돈(餛飩)이라 한다.


선조들은 계절마다, 절기마다 풍년, 무병장수, 액막이 등의 의미를 부여한 특색 있는 떡을 해먹으며 1년을 지냈다. 봄에는 진달래꽃 등 꽃잎을 따 곁들인 화전이나 취떡을, 여름에는 술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 증편을, 가을에는 햅쌀로 송편을 빚어 주민들과 나눠 먹었고, 겨울에는 떡 옹심이를 넣은 팥죽과 흰 가래떡을 뽑아 떡국을 끓여 먹었다. 설날 아침에 흰 떡국을 끓여 먹는 것은 1년 동안 때묻지 않고 밝고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고, 떡을 엽전 모양으로 둥글납작하게 써는 것은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한다.


떡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해먹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상류층의 별식이나 세시풍속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하나의 간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관혼상제 의례와 각종 연회의 필수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성경에도 특별한 날에 먹는, 특별한 떡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 떡은 누룩을 넣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가 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린도전서 5:7~8)


사도 바울은 누룩 없는 떡으로 유월절을 지키자고 강조했다.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자는 뜻이었다. 이천 년 전 인류를 살리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바로 전날이 유월절이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6:17~26)


유월절에 최후의 만찬을 하기 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예수님의 살을 의미하는 유월절 떡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1~54)

<참고자료>
네이버캐스트,서울 떡박물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2&contents_id=2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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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0일 금요일

해마라고 합니다 해마 귀여워요


수족관 가서 찍었어요 해마라는데 참 귀여워요 ㅋㅋ
집에서 키우고 싶네요 ㅋㅋ


2015년 4월 9일 목요일

잃어버린 자를 찾아 오신 안상홍님




안상홍님께서는 우리를 찾아 찬란한 하늘의 영광을 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안상홍님께서는 하나님의교회를 세워주시고
잃어버린 자녀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알게된 아버지 안상홍님의 사랑
그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고 크신 사랑의 결정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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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작은 단추에서부터 주머니 속 동전 몇 개, 신분증, 휴대전화, 지갑까지, 일상 속에서 우리는 늘 크고 작은 것들을 잃어버린다. 때로는 단순한 사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나 가족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잃어버린 대상으로 인해 느끼는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놀이동산에서 어린 자녀를 잃어버린 엄마의 슬픔은 휴대폰이나 지갑을 잃어버린 슬픔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만큼 슬픈 일인 것이다.


모든 잃어버린 것들은 제각각의 사연이 있고, 잃어버리게 된 계기가 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분실했을 때에도, 그것이 주인의 손을 떠나게 된 데는 어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아무 이유 없이 주머니 속의 동전이 마술처럼 사라지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경우라면 얼마나 절절하고 가슴 아픈 이유와 사연들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거리의 실종 전단지를 무심코 스쳐 지나간다. 나와는 관계없는 타인들의 이야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하늘에서 ‘잃어버린’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0)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늘에서 잃어버린 자는 곧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살던 존재, 즉 천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천사였던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잃어버리게 되셨고, 우리는 어떻게 이 땅으로 오게 된 것일까.


내(예수님)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13)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이 땅에 오셨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하늘에서 큰 죄를 짓고 이 땅으로 쫓겨온 죄인들이다. ‘잃어버린 자’라는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죄인인 우리를 ‘쫓겨난 자’로 칭하지 않으시고 ‘잃어버린 자’라 표현하셨다. ‘잃어버리다’라는 말은 단순히 그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 한 마디 속에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과 그리움이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을 다시 찾고자 하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하늘에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찾아 천국으로 다시 인도하시기 위해 2천 년 전 예수님은 죄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뿐 아니라 이 시대에 성경의 예언을 따라 등장하신 성령과 신부가 지금도 하늘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계신다.


잃어버린 물건을 우연히 다시 찾게 된다면 그것만큼 더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대상인가에 따라 그 기쁨의 크기는 다를 것이다. 잃어버린 한 명의 자녀를 찾았을 때 하나님은 얼마만큼의 기쁨을 느끼실까. 그것은 성경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누가복음 15:11~32).


집을 떠나 허랑방탕하며 재산을 허비했던 아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멀리서부터 그의 모습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종들에게 말한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2015년 4월 7일 화요일

봄꽃 목련



목련이 너무나 이쁘게 피었습니다 ^^
정말 정말 이뻐요
목련꽃잎으로 풍선이 불려진다는 사실을 아시나 모르겠네요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복음이란? 하나님의교회에 있나 볼까요?


요즘 복음 복음 하는곳이 참 많습니다.
복음은 문자그대로는 복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다 가지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
오직 하나님의교회에만 복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교회에만 복음이 있을까요?

한번 복음이 뭔지 자세히 한번 보실까요? ^^




복음이란?


복음이란 문자적으로 ‘복된 소식’을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복음은 구원과 직결되는 만큼 신앙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에베소서 3:6)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약속에 참예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복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음을 뜻한다(요한일서 2:25).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 속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복음 전파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4:23)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것은 천국 복음이다. 그저 사람들의 귀에 즐거운 한낱 좋은 소식이 아닌 영혼의 생명을 소성시킬 수 있는 ‘복음’은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모든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도 함께 지켰다. 이들은 복음 속에 담긴 축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큰 축복이 담긴 복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흔히들 ‘복음’이라는 단어에만 중요성을 두고 ‘복음 교회’, ‘복음 선교’, ‘복음 의상실’ 등 각종 명칭에 ‘복음’을 쓰고 있다. 하지만 복음이 중요한 것은 명칭보다 그 속에 담긴 내용이다. 우리는 앞서 복음을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살폈다. 하나님의 후사가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며 영생의 약속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복음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진리는 무엇이 있을까.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브리서 8:8~10)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성경에서 새 언약이 뜻하는 것은 유월절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누가복음 22:8)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다시 말해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된다. 이는 복음이 곧 새 언약 유월절이라는 뜻이다. 또한 복음으로 하나님의 지체가 된다는 말씀도 새 언약 유월절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지체가 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린도전서 10:16~17)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할 수 있는 예식은 유월절 성만찬 예식이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유월절의 떡이 그리스도의 몸이며 유월절의 잔이 그리스도의 피다. 즉 유월절을 지킴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으로 모두가 한 몸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면 얻게 되는 축복 중 하나가 죄 사함이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8, 26~28)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 것이다(로마서 6:23). 곧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약속인 영생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복음에 내포된 후사, 지체, 영생의 축복이 고스란히 새 언약 유월절 속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천국복음은 곧 새 언약 유월절인 셈이다. 명칭만 ‘복음’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다 복음이 아니다. 만약 어느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한다면 그 속에는 새 언약 유월절 진리가 있어야 한다. 새 언약도 모르고 유월절도 지키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파한다면 이는 다른 복음이 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6~9)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복음의 결과는 오직 저주뿐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복음의 핵심인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다른 복음으로 멸망의 대상이 된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천국 복음은 새 언약 유월절이며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초림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사도행전 5: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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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0일 화요일

정말 밝은 시리우스

하늘에 보면 별들이 있지요
저는 별을 참 좋아합니다

그중에 젤 밝은 별이라고 하는 시리우스 입니다
이건 좌구산 천문대에 놀러갔을때 거기 관리하시는 분께 부탁해서 한장 찍었습니다
정말 정말 신기했는데 말이지요



2015년 3월 9일 월요일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유월절 들어보셨나요?
유월절은 아주 신비로운 절기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곳은 오직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신비로운 기적 유월절을 한번 알아 볼까요?



신비로운 기적, 유월절


바이러스와 지진, 화산폭발, 태풍, 홍수, 폭설과 같은 자연재해 그리고 테러, 핵전쟁과 같은 인위적 재앙들 외에도 질병, 사고, 범죄 등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소행성과의 충돌, 싱크홀 등 상상할 수 없었던 온갖 재앙의 요소들도 산재해 있다.


이에 사람들은 지하벙커를 마련하거나 비상식량과 비상물품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세계 각국에서도 대재앙에 대비해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은 멸종위기종의 유전자은행 설립을 준비 중이고, 미국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동식물의 유전자 표본을 달에 보내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노르웨이령인 북극 스발바르제도의 한 섬에는 2006년 착공해 약 2년 동안 건설된 ‘최후의 날 저장고(doomsday vault)’라 불리는 국제종자저장고가 있다. 저장고는 지하 130m 깊이의 영구동토층에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곳에 벼, 보리 등 5천 점의 종자를 보냈다.


과연 이 방법들이 인류가 멸종되거나 지구가 멸망한 후에 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을까. 재앙을 대비하는 데 있어 인류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시대 일어나고 있는 많은 재앙들이 성경의 예언에 근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은 이미 무수한 재앙들을 경고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성경의 예언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구원의 소식을 허락해 주셨다.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누가복음 21:9~11)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애굽기 15:26)


···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출애굽기 12:11~14)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시기 위해 이집트 전역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그중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실 때, ‘유월절’을 지켜 어린양의 피가 문에 발린 집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이는 재앙이 넘어가는 절기인 유월절의 유래가 되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 19~20)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로써 유월절 예법을 새롭게 세워주셨다(요한복음 6:53~55, 마태복음 26:26~18).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을 지켜 재앙에서 구원받았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약속대로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킨 자들에게는 어떠한 재앙도 엄습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지키기를 원하고 원하셨던 새 언약 유월절은 재앙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거룩한 약속이요, 가장 확실한 대비책이다. 재앙이 임하는 순간, 유월절을 지킨 자들은 유월절의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편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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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5일 목요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들어보셨나요?


위대한 모성의 시작은 바로
영원한 어머니 하나님으로 부터입니다.

어머니 하나님 들어보셨나요?
우리 영혼들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 하나님
우리가 반드시 찾아야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어머니 하나님을 만나 천국에 가요~~


2015년 3월 4일 수요일

새언약의 안식일을 지키는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안식일은 구약의 율법이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안식일은 구약의 율법이 아닙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새언약의 율법입니다.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는 새언약의 신약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안식일은 어떻게 틀릴까요?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안식일

구약 당시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고,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주며 지키도록 권고하셨다. 그 율법 중 하나가 제 칠 일 안식일이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정하신 날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8~11)


안식일은 축복이 보장된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무엇보다 안식일은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과 그들을 잇는 연줄이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출애굽기 31:12~13)


안식일은 이를 테면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커플의 결혼서약서 같은 것이다. 결혼서약서가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증명하듯 안식일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증명하는 증서인 셈이다.

구약의 안식일

구약 당시 안식일에 대한 룰은 매우 엄격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율대로 안식일을 엄중하게 지켰다. 제 칠 일 안식일이 되면 각 처소에 거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불조차 피우지 않았다.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 칠 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35:2~3)


혹 이를 어기고 안식일에 일을 하면 그 사람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니라 (민수기 15:32~36)


사람의 생각으로는 안식일에 나무하는 것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큰 죄라고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큰 죄이며,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가리켜 ‘삶을 얻을 내 율례’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에스겔 20:11~12)


한편, 제사장들은 성소의 일을 맡아 백성들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제사를 드리는 직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안식일마다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에 맞춰 수양으로 번제를, 일정량의 곡식가루와 기름으로 소제와 전제를 드렸다(민수기 28:9~10).


이와 반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혼을 삼키고 멸하는 이리’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에스겔 22:25~27). 그만큼 안식일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규례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신 것이다.

신약의 안식일

구약의 율법은 장차 나타날 참 형상에 대한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불완전한 구약의 율법을 완전한 율법으로 바꿔주시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저희(구약시대 제사장들)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이제 그(예수님)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히브리서 8:5~6)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태복음 5:17)


예수님께서 바꿔주신 안식일은 구약시대와는 현저하게 달랐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에 각 처소에 거하며 아무 일도 하지 못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며 이삭을 잘라 먹기도 했다(마태복음 12:1~8). 이는 안식일에 일을 해도 무방하다는 의미였다.



특히 제사 예법은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렸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희생 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29, 고린도전서 5:7, 히브리서 9:11~12). 이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를 올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면 되는 것이다.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히브리서 7:12)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3~24)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안식일 규례에 따라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고 전도를 하기도 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사도행전 13:44)


안식일에 우리(바울과 그 일행)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 (사도행전 16:13~15)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행전 18:4)


현재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완전해진 새 언약의 안식일이다. 죄인들을 위해 대신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덧입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영원한 안식의 축복을 허락받는 복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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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3일 화요일

사라진 안식일~~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것처럼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교회에서만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일까요?
왜 세상 많은 교회들은 하나님의교회처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일까요?









사라진 안식일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주일의 첫째 날인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요일이 휴일로 정해져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일요일에는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는 1895년 양력(陽曆)과 칠요(七曜) 제도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관청 근무시간 규정에 일요일이 휴일로 정해졌고, 대한민국 헌정 후 1949년 6월 4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공휴일로 제정된 이래 변함없이 일요일에 쉬고 있다.


일요일을 공휴일로 제정해 쉬기 시작한 건 1600년 전 로마였다. 321년 3월 7일,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휴업령을 반포한다.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한 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반포하며 콘스탄티누스는 그날을 ‘태양의 날’, 즉 Sunday(일요일)라고 명명했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달력(율리우스력)을 보완하여 7일이 기본이 되는 칠요 제도를 도입했다.


7일 단위로 한 주간을 나누어 생활한 기원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창세기의 기록과 일곱째 날을 성일로 삼아 지켰던 기록이 그 기원이다(창세기 2:2~3, 출애굽기 20:8~11).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칠요 제도에 로마 점성가들의 사상에서 비롯된 일곱 별의 신(神)들의 이름을 접목시켜 요일명을 정했다. 일곱 별의 신들은 토성의 신, 목성의 신, 화성의 신, 태양의 신, 금성의 신, 수성의 신, 달의 신으로 불렸다. 이는 지동설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일곱 별의 신이 하루 24시간을 한 시간씩 차례대로 돌아가며 다스린다고 믿은 데서 기인한다.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행하는 토성부터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을 24시간에 맞춰 순서대로 배열하면, 첫 번째 열에 토성,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순으로 배열된다. 당시 점성가들은 바로 이 첫째 열에 오는 별의 신이 그날 하루의 첫 시간을 다스린다고 믿었는데, 콘스탄티누스는 바로 그 별의 이름을 그날의 요일명으로 정했던 것이다. 즉, 토성의 신이 첫 시간을 다스리는 날은 토요일, 태양이 첫 시간을 다스리는 날은 일요일, 달의 날은 월요일, 다음 화요일, 수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라는 요일이 만들어졌고, 그중 한 주간의 첫날을 태양의 날, 즉 일요일로 제정함으로써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순서의 칠요 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기 수 년 전이었던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관대한 정책의 칙령을 반포한 바 있다. 밀라노칙령이 그것이다. 그는 “이제부터 모든 로마인은 원하는 방식으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 로마인이 믿는 종교는 무엇이든 존중을 받는다.”는 포용정책을 쓰며 이전의 황제들과는 달리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고 공인했다. 하지만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었을 뿐 공식 종교로 삼은 건 아니었다.


역사가들은 그의 이런 행보에 대해 그가 이방종교의 최고위직 칭호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고 죽을 때까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 볼 때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는 의도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당시 로마의 대다수 국민들이 미트라(태양신) 교도였기 때문에 그들을 달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로마 교회였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미트라 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의 제도를 많이 끌어들였다. 그중에 하나가 그들이 태양신에게 예배하던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한 것이다. 황제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은 퍽이나 합리적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계명일 뿐이었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산중으로, 사막으로 피해 믿음을 지켜나갔다.


일요일 휴업령이 반포된 지 4년 후인 325년, 가톨릭은 니케아공의회를 통해 예배일을 안식일(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공식적으로 바꿨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일로 정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은 이렇게 사라졌고,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다. 하나님의 구속의 때가 되어 진리의 빛이 드러나기 전까지.

2015년 3월 2일 월요일

주일은 언제일까?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본이 되는 예배
그 예배의 날을 바로 지키는 교회는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보지만 왜 언제 봐야 하는지 잘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기록된 대로 예배를 보는 교회입니다





주일은 언제인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는 ‘주일성수’다. ‘주의 날’을 줄여 ‘주일(主日)’이라고 칭하며, 대부분 일요일에 지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하나님의 날은 일요일이 아니다. 일요일이 주의 날이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당신의 날이라고 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출애굽기 31:13)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이를 일컬어 ‘나의 안식일’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당신의 백성임을 인지시켜 주시기 위해 안식일 앞에 ‘나의’라는 전제를 두셨다(에스겔 20:20). 이는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약시대 안식일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었듯이 신약시대 안식일의 주인은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이었다.


인자(예수님)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8)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6:5)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 것은 ‘여호와의 안식일’이 곧 ‘예수님의 안식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키셨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이처럼 성경은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안식일을 ‘하나님의 날’로 명시했다. 그래서 사도들은 주의 날인 안식일을 지키며 말씀을 강론하곤 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 (사도행전17:2)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행전 18:4)


성경에서 말하는 주일(主日)은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이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주 여호와의 날이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주 예수님의 날로 성별하여 거룩히 지켰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이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계시록 1:10)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가 주후 90년경이었으니 그때까지도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변함없이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주일, 즉 하나님의 날을 지키고 싶다면 일요일이 아닌 일곱째 날 안식일, 토요일에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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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일 일요일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주는 다시침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기본적인 침례.. 하지만 구원이 약속도지 않은 곳에서 받은 침례는 침례로서의 효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 있는 교회에서 침례를 다시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경대로 침례를 주는 곳은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에서 받는 침례가 진정한 침례로서의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 지금 부터 한번 간단히 살펴 볼까요?




재침례


바울은 이미 침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침례를 받으라고 권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은 침례에서 시작한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운명하셔서 무덤에 장사된 후 부활하셨듯이,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고난에 동참하고 죄의 몸을 물속에 장사 지내고 거듭나는 의식이 침례다. 한마디로, 우리의 죄를 씻는 의식이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2:12)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1)


이런 의미에서 침례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행해야 하는 중요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침례는 구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디서, 누구의 이름으로 받는가 하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며 또 받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 침례를 행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다. 죄 사함은 오직 그 시대 구원자의 이름으로만 받을 수 있다(요한일서 2:12, 사도행전 10:43).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성령시대에는 당연히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만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아닌 직함으로 침례를 받았다. 즉, 죄 사함을 주는 침례가 아닌 것이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직접 교훈하여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각 시대마다 구원자의 이름을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출애굽기 9:16, 시편 9:10, 이사야 52:6, 마가복음 13:13).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태복음 28:19)


2천 년 전 초대교회에서도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던 유대인들이 사도들에게 성자시대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재침례를 받았던 역사가 있었다.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사도행전 19:3~5)


바울이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 받기를 권한 이유는 요한의 침례에는 구원의 약속이 없었기 때문이다. 죄 사함은 그 시대 구원자의 이름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성자시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재침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지막 성령시대 구원자가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증거하셨다. 사도 요한은 성령시대의 구원자, 재림 그리스도께서 새 이름을 가지고 오신다고 예언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그렇다면 오늘날 성령시대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죄 사함과 구원에 나아갈 수 있겠는가. 예수님인가, 아니면 성령의 새 이름인가. 2천 년 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침례를 받았던 유대인들처럼, 지금 우리도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새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가 없는 교회에서 받은 침례는 진정한 구원의 표가 될 수 없다. 하늘의 죄인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천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인 침례는 반드시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참된 구원의 약속을 받기를 원한다면 진리가 있는 교회에서 재침례를 받아야 한다.

출처 www.pasteve.com 패스티브닷컴



해마라고 합니다



해마라고 합니다~~
정말 귀엽게 생겼죠 
ㅋㅋ 어떻게 저렇게 생길수가 있죠? ^^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세례와 침례

오늘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아주 기본이고 중요한 침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성경대로 침례를 주는 교회는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침례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침례주는 지구상에 유일한 교회입니다





세례나 침례는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에게 있어 신성한 예식이다. 신앙의 최종 목적인 구원으로 향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예식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세례는 죄를 물속에 씻는다는 의미고, 침례는 죄를 물속에 장례 지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비기독교인들이야 두 예식의 차이를 별반 느끼지 못하겠지만 실상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예식들의 차이점을 교리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세례

1. 근거

세례(洗禮)의 한자는 씻을 세(洗), 예식 례(禮)다. 성경에서는 죄를 적은 양의 물로 씻어서 사했다는 세례식의 기록은 없다. 단지 역사적으로 살펴본다면 세례 의식은 초기 기독교가 예루살렘을 시작해 소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로 전파되면서 생겨났다. 당시 무역이나 여행에서는 불가피하게 사막을 지나야 했고 물이 귀한 사막에서 복음을 들은 후 새 삶을 찾고자 예식을 행해야 하는 경우,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할 수 없어 물을 조금 뿌려 약식으로 행하는 세례식을 베풀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행해졌던 이 예식은 A.D. 120년경 많은 교회로 전파됐다.


2. 교단

세례식은 로마 카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에서 행해지고 있다.


3. 결론

세례식은 성경에 기인하고 있지 않다. 예식 자체가 사람들의 편의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의미 정도만 성경에 두고 행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있는 셈인 것이다. 세례식으로 죄 사함을 받고자 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방법으로 죄 사함을 구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죄 사함, 즉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 한 포털사이트에는 세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성서의 세례는 물에 몸을 담그는 방식이었다. 즉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하던 대로 강이나 호수의 물속에 완전히 몸을 담가야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침례

1. 근거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으로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침례를 행하게 하셨다.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13~17)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받은 침례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침례(浸禮)의 한자는 잠길 침(浸), 예식 례(禮)다. 예수님께서는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다. 몸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는 의미다. 간단하게 세례식을 행했다면 굳이 물에 내려가서 온몸을 적시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요단강 속으로 함께 내려가 침례식을 행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죄 사함의 의식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5)


2. 교단

오늘날 침례를 행하는 교단에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있으며 그 외에도 침례교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 여호와의증인 등이 있다.


3. 결론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구원의 표인 ‘침례’를 거론하고 있다. 침례는 온몸을 물에 적시거나 담그는 예식으로 반드시 ‘침수’가 원칙이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현 재무부 장관급인 내시에게 베풀었던 예식도 세례가 아닌 침례였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 (사도행전 8:35~39)


이 두 사람의 행위 속에서 침례라는 예식의 시급함을 짐작할 수 있지만, 고관대작으로서 조금 더 좋은 자리를 마련하고 깨끗한 물 한 병으로 얼마든지 예식이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세례가 올바른 예식이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침수’를 원칙으로 하는 침례식은 물 한 병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비록 하천에 흐르는 물이라도 온몸을 적셔야 하는 침례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깨끗한 옷 정도는 버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내시의 결단을 보면서 천국을 향한 그의 믿음과 당시 행해졌던 죄 사함의 의식이 바로 침례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침례는 깨닫는 즉시 행해야 한다. 6개월이나 1년간의 학습 후 침례를 행하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침례를 즉시 행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1)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사람은 하루 동안에도, 한 시간 후 또는 일 분 후에도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침례를 베푼 후에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


출처 : www.pasteve.com

이처럼 침례와 세계는 참 큰 차이가 있다는 것 아셨죠?
오직 침례를 성경대로 주는 곳은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2015년 2월 26일 목요일

한장더


열장 사진을 찍으면 한장 마음에 드는것이 나오는 것이
참 가성비는 좋은 편은 아닌것 같습니다 ^^ 


제일 맘에 드는 꽃사진


찍은 꽃사진들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사진입니다.
예전에는 꽃을 많이 찍었었는데..
지금은 어쩐일인지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 


단풍


단풍나무다~~
근데 이 단풍나무는 사시사철 빨간게 좀 이상합니다
아직 철을 모르나 봅니다


풀잎과 하트


풀잎에 이슬이 맺혔다
아니 비가 왔다 그쳤다고 봐야겠지.. ^^ 

그런데 꽃잎이 떨어져서 하트처럼 보인다



이름이 뭘까


꽃들도 다 으림이 있다는데 이름이 뭘까?